이완수 관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립회관민주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이원교 입니다.
제가 정립회관을 이용하고 또 여기서 자립생활운동의 이념을 배운지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 정립회관에 들어섰을 때의 기대와 설레임은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대할 때의 감정이 아닌, 제가 항상 목말라 하던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문제점과
모순을 단번에 흔들어 놓은 정립회관의 역동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립생활이념의 전파’라는 가슴 벅찬 목표 안에 모두가 한가족이었습니다. 뜨거운
토론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료상담을 하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었으며, 일본연수 때에는 작은
것이라도 놓칠까봐 그날 보고 배웠던 것을 서로에게 묻고 가르쳐 주던 날들......
정립회관은 중증장애인의 삶의 목표와 방향을 가르쳐 주었고, 전문가들과 당사자들의 파트너쉽을
보여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회가 편법적으로 관장 임기를 연장하고, 이에 반대하는
중증장애인들과 사회복지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농성 220여일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은 뒤틀려져 있습니다. 중증장애인에게 자기선택권, 자기결정권을 가르쳐주던 그들은,
단지 시설민주화를 외치는 농성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중증장애인들에게 ‘은혜’를 알라며
‘억압’을 강요했으며, 활동성을 보장해준다던 그들은 우리의 팔다리와 같은 활동보조서비스를
‘잘라’ 버렸습니다.
교육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온 중증장애인당사자를 위한 자립생활운동은 정립회관에서 이제 극히
선택받은 엘리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무기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지난날 웃고 지내던 그
얼굴들을 폭력만행의 현장에서, 농성장을 새벽에 침탈한 조직폭력배와 함께 보았을 때의 그
참담한 배신감, 그리고 자기들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들어왔었다는 그 천박한 변명은 분노를
느끼기 전에 연민을 갖게 하더군요. 중증장애인들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으로 되찾은 일터에서
그들은 누구를 위해 사회복지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우리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 행위를 저 개인적으로는 이제 용서하고자 합니다.
관장님께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진정 장애인복지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으로써 명예로운 길을
가고자 하신다면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최근 공대위도 아닌 이사회도 아닌, 정립회관의 지도감독기관인 광진구청에서 중재안을 냈다고
합니다. 전액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시설의 파행운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나봅니다. 허나 관장님은 그것마저 거부의사를 밝히셨더군요.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가야
마음의 문을 여시렵니까? 시설의 폐쇄를 운운하는 감독기관의 중재안이 그렇게
미덥지않으셨던가요?
관장님보다 더 장애가 심한, 제 한몸 가누기 힘든 중증장애인들이 뜨거운 여름과 가을을 지나
매서운 한파 속에서 추운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설민주화를 염원하는 사회복지노동자들이
함께 농성하고 있습니다.
관장님, 제가 농성을 그만두는 날, 관장님과 웃으며 악수하고 싶습니다. 정립회관이 더 이상
증오와 파행의 장이 아닌, 용서와 화해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길 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2005년 1월 30일
정립회관민주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이원교 씀.
|